잇다 시리즈 <천사가 날 대신해>에 실린 박민정의 단편소설에서 로사를 처음 만났다. 장편소설 <호수와 암실>에도 로사가 나온다. 다른 로사다.
다르지만 같은 로사다. 로사는 악역이지만 퇴치해야 할 마녀는 아니라는 데 의미가 있다. <호수와 암실>의 화자인 연화가 직접 고백하듯이, 연화 자신이 로사와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공유하는 만큼 닮아있다.
반복해서 심장을 파고드는 키워드는 ‘내부의 적’이다. 적은 점점 ‘조직 내부’에서 ‘나의 내부’로 이동해 왔다. 적이 원래 있던 곳을 추적해서 거슬러 올라오면 나를 만난다. 내 안의 여성 혐오자.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싶은데 용서할 수 없는 여성의 행위를 혐오 없이 해석할 수 없는 나 자신의 기만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호수와 암실> 북토크에서 저자가 언급한 브룩 쉴즈의 문제작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너무 어린 시절에 본 너무 어린 배우의 충격적인(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였고, 관능을 탐하는 마음과 비례하는 소비됨에 대한 공포를 ‘벗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날의 호기심은 <전교생의 사랑>에 실린 연작소설을 통해 활활 불타올랐다.
한국어로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써낸 박민정이 영어권 작가를 이미 넘어섰다고도 생각한다. 우리가 거리를 두거나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옆의 다양한(친해지기 전에는 혼혈인 것조차 모르고 넘어갈) 존재를 보다 섬세하게 지켜보고 배려하게 하는 힘. 비주류로 포섭되기엔 너무도 자국에서 주류인 우리를 각성시키는 이야기의 힘에 무너지는 동시에 매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