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2025년을 움켜쥔 성해나
어떤 현상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일종의 과학법칙처럼 보일 정도였다.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변절에 비하면,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려는 노력은 타협일지언정 착한 배신이다. 그걸 '진짜' 배신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부러지겠지.
성해나의 인물들과 성해나 작가는 부조리에 조명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조차 '빙의'됨으로써 오히려 거리를 두게 한다. 만나면 머리채를 잡게 될 것 같은 인물도 배신자라 뺨을 후려치는 대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인물과 역사는 게임하듯이 리셋하고 삭제해버릴 수 없다. 판타지에서조차 '전복'을 내내 추구해왔지 않은가. 픽션은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픽션이 현실의 나를 강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기껏 맞춰줬더니 무시하는 장수할멈이나 흉내만 내는 놈(들)에게 내내 배신감을 느꼈어도 단 하나의 뿌듯함이 있다. 나는 나로 살기를 저버리지 않았다. 타성과 사회적 기대가 삶의 기준이었던 사람들이 우울해질때쯤 내게는 맨얼굴로 직시할 수 있는 성능 좋은 거울이 생길거라 믿으며.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나답게 흔들리는 것. 그것이 진짜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요." -인터뷰_드라이브 마이 픽션(성해나×소유정×한정선), 《릿터》 54호(2025년 6/7월)
’혼모노‘를 읽고 단숨에 홀렸던 성해나의 초기작은 수많은 사유와 취재, 시도와 퇴고의 결과물이며(작가의 말을 통해 단서를 제공하지만)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대담한 행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로 인해 소설이 나아간 곳, 작가 성해나의 확장된 역량에 감탄을 거듭한다.
어쩌면 가장 순수한 마음, 동심과 이심전심, 이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상처받고 당황하고 분노하지만, 끝까지 매달리거나 크게 일을 벌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품고, 안주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영화 대사를 통해 발화를 시도하는 경, 아기의 젖니를 보며 시를 쓰는 순이, 할머니를 향한 '염병'할 마음들. 빛나는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한 폭의 타투 같은 마음들.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을 놓지 못하는 마음.
무르익은 그 마음은 어디로 가게 될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어쩌면 영영 겪지 못할-사랑과 생애를 상상과 짐작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오래간 품을 들여 그것을 해나가고 싶다는 염원을 갖는다.” -작가의 말, <빛을 걷으면 빛>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