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감정적으로 무심하고, 냉정한 성정 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설국에서의 모든 시간이 헛수고가 아니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돌려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매번 그런 말을 듣고도 "맞아요, 헛수고죠." 라고 웃으며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인정하던 고마코는 사실 매일 울고 있던 여자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상황이 너무나도 버거웠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며 마음속 균열을 받아들이던 사람. 매 순간 조금씩 무너졌지만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면했던 사람. 오히려 마지막에 왈칵 무너져 하얘져 버린 '밤의 밑바닥'에 떨어진 것은 시크한 남자인 척하던 시마무라였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고 사랑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다고 트로피를 받을 수 없고, 착하게 살았다고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주지 않는다. 그리워한다고 눈물의 재회를 하는것도 아니고 함께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 사랑이고, 삶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성의껏 오늘을 살아내고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결과를 바라고 인생을 사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최소한 내가 원하던 방향 가까이라도 화살이 꽂혀야 헛수고가 아니지.” 라고 하지만 그런 기대는 오히려 시마무라처럼 한순간에 넘어져 다시 일어날 힘조차 잃게 만드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인생은 나를 배신할 것이고 내가 기댈곳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국경의 긴 터널같은 고전소설들을 읽으며 내가 배운것들은 이런것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고전을 읽을수록 현실에서의 삶을 더 가볍고 산뜻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도, 계절도, 감정도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음을 우리의 인생은 녹아버리는 눈처럼 덧없는 듯 보여도 그 허무함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고전은 일깨워준다. 순간을 소중히 하는 마음, 헛수고과 공허함을 견디는 마음. 그 마음으로 여름을 그리고 겨울을 건너가고 있다.
작가 샤인: <빛의 서점> (클릭)의 저자. @shine_essaybook 내 안의 세상이 고요하기를 꿈꾸는 사람. 가지런히 정돈된 책들이 놓인 서점에 들어서면,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은은하고 평온한 이미지가 깃든다고 느낀다.